조선은 세조(世祖, 1417~1468)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몰락을 임진왜란(1592)이나 병자호란(1636) 이후부터로 보지만,
사실 조선의 근본적인 부패와 약화는 세조의 불법적인 정권 찬탈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지 불과 60여 년 만에 권력층이 썩어가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조선을 근본적으로 약한 나라로 만들었다.
만약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처럼 대륙에 있었다면,
훨씬 빨리 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조가 조선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살펴보자.
1. 세조는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다 – 불법적인 왕위 찬탈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세운 나라였지만, 왕위 계승 원칙은 정당성이 중요했다.
즉, 왕이 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고, 반란으로 왕위를 빼앗으면 절대 안 되었다.
하지만 세조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어린 조카(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
- 태종과 세종은 정통성 있는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 하지만 세조는 힘으로 왕권을 찬탈했을 뿐,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다.
-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을 도운 세력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어야 했고, 이는 결국 조선의 근본적인 부패로 이어졌다.
결국 세조의 불법적인 왕위 찬탈은 조선 왕권의 정통성을 흔들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필요하게 되었다.
2. 훈구파의 탄생 – 조선을 좀먹은 탐욕스러운 권력 집단
세조는 스스로 왕이 될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도운 세력들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집단이 바로 훈구파(勳舊派)였다.
(1) 훈구파는 본질적으로 부패한 집단이었다
- 훈구파는 세조가 왕이 되도록 도운 대신들로 구성되었다.
- 이들은 단순히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 움직였다.
- 세조는 이들의 힘을 빌려 정권을 유지했고, 훈구파는 그 대가로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
(2) 민생보다 자신들의 배만 불렸다
- 훈구파는 관리의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들이 부패를 조장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 조선이 건국될 때 강조했던 ‘공정한 정치’와 ‘민생 안정’ 같은 개념은 훈구파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 훈구파는 조선을 철저히 자신들만의 권력과 이익을 위한 나라로 만들었다.
3. 세조와 훈구파의 결탁이 조선을 타락시켰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훈구파와 손을 잡았지만,
이것이 결국 조선을 근본적으로 부패한 나라로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 조선은 훈구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개혁과 혁신이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 관료들은 실용적인 정치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게 되었다.
- 결국, 조선의 정치 구조 자체가 부패를 전제로 한 체제가 되어버렸다.
세조가 왕이 된 이후부터, 조선의 정치 시스템은 점점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방향으로 굳어져 갔다.
4. 조선은 60년 만에 부패했고, 대륙에 있었다면 더 빨리 망했다
조선은 1392년에 건국되었지만,
세조가 집권한 1455년부터 부패가 시작되었다.
즉, 조선은 겨우 60여 년 만에 타락하기 시작한 셈이다.
비교해보면,
- 명나라는 건국 후 약 150년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다.
- 청나라는 건국 후 100년 넘게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유지했다.
반면, 조선은 세워진 지 60년 만에 상류층이 부패하면서 기득권 세력이 형성되었고,
이후 500년 동안 그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만약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처럼 외세의 침략이 잦은 곳에 있었다면,
이미 16세기쯤 나라가 멸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 한반도라는 지리적 요인 덕분이었을 뿐,
- 내부적으로는 이미 세조 때부터 국가 시스템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5. 결론 – 세조가 조선을 망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
세조는 조선을 강한 나라로 만들기보다,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군주였다.
그가 남긴 부정적인 유산은 다음과 같다.
✅ 정통성을 무너뜨렸다 → 왕위 찬탈이 가능해지면서, 이후 정치적 혼란이 지속됨.
✅ 훈구파를 탄생시켰다 → 탐욕스럽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조선을 지배하게 됨.
✅ 민생보다 권력 유지에 집중했다 →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고, 조선은 실용성이 없는 국가가 됨.
결국, 세조 이후 조선은 양반 귀족들이 부패하고, 개혁이 어려운 사회 구조로 굳어졌다.
이러한 시스템이 조선 후기에 큰 약점이 되어,
결국 외세의 침략에 쉽게 무너지고, 식민지가 되는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세조가 없었다면,
조선은 보다 개혁적인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더 강한 국가가 되어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근본을 망가뜨렸고,
그 후유증이 500년 동안 조선을 갉아먹었다.
따라서, 세조야말로 조선을 약한 나라로 만든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였다.
세조는 조선왕조의 전두환과 같다.
계유정난이라는 단어도 너무 고급지다는 생각이 든다.
계유찬탈로 이름을 바꾸어야할 것이며
세조라는 왕 이름 대신에 이찬탈이라고 불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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