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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심리과 역사

메이지 유신과 조선 – 일본은 근대화를 해냈지만, 조선은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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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 침입하며 근대화의 파도를 일으켰고,


이 파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 나라의 운명이 갈렸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불과 30여 년 만에 강대국으로 변신했다.


반면, 조선은 같은 시기 아무런 개혁도 하지 못한 채 내분과 부패로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일본은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했고, 조선은 실패했을까?


그 차이를 비교하면, 조선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고 얼마나 무능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1. 메이지 유신 –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도약한 과정

메이지 유신은 1868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개혁이다.


서양 열강의 침략을 막고,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막번 체제(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개혁한 과정이다.

(1) 페리 내항과 개혁의 시작 (1853~1858년)

  •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강제로 개항을 요구했다.
  • 일본은 서구 열강이 아편전쟁(1840~1842)에서 청나라를 무너뜨린 것을 보고 **"우리도 개혁하지 않으면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졌다.
  • 결국 1858년 미·일 통상 조약을 맺으며 서구와의 교역을 시작했다.

(2)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 수립 (1868년)

  • 일본 내에서는 **"서구와 대등하려면 더 강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 1868년,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연합하여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정부를 세웠다.

(3) 근대적 개혁과 산업화 (1870~1890년대 초반)

  • 군제 개혁: 서구식 징병제를 도입하고, 사무라이 계급을 없앴다.
  • 교육 개혁: 서구식 학교 시스템 도입, 과학·기술 교육 강화.
  • 경제 개혁: 철도, 공장 건설, 금융 시스템 정비, 산업 발전에 집중.
  • 헌법 제정(1889년): 입헌군주제 도입, 근대적 정치 시스템 구축.

이러한 개혁을 통해 일본은 불과 20~30년 만에 근대 국가로 변신했다.


메이지 유신은 생각보다 짧았고, 개혁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2. 같은 시기,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같은 시기 조선은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본이 개혁을 추진하는 동안, 조선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신분제와 왕권 강화를 고집하며 변화의 기회를 거부했다.

(1) 안동 김씨 세도 정치로 국정이 마비 (1800~1863년)

  • 순조, 헌종, 철종 때는 안동 김씨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며 부정부패가 심했다.
  • 왕은 실권이 없었고, 관리들은 백성을 착취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챙겼다.
  • 그동안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군사 개혁을 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소수의 양반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몰두했다.

(2) 흥선대원군의 폐쇄적인 개혁 (1863~1873년)

  • 일본이 서구와 교류하며 근대화 기반을 다질 때,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문호를 닫고 외국과 교류하지 않음)**을 강력히 추진했다.
  • 그는 일부 개혁(경복궁 재건, 군제 개편 등)을 시도했지만,
    서양의 기술과 산업화를 받아들이는 개혁은 하지 않았다.
  • 오히려 "서양은 오랑캐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근대화를 거부했다.

(3) 개항 이후에도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함 (1876년 이후)

  • 1876년,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강제로 조선을 개항시켰다.
  • 하지만 조선 정부는 개항 후에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다.
  • 1884년, 개화파(김옥균, 박영효 등)가 갑신정변을 일으켜 개혁을 시도했으나,
    고종이 청나라를 불러 개화파를 탄압하면서 개혁이 좌절되었다.

(4) 내부 갈등과 부패로 스스로 무너짐 (1890~1900년대 초반)

  • 조선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를 불렀다가 일본이 개입하며 청일전쟁(1894~1895)이 발발했다.
  •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의 운명은 더욱 일본에게 좌우되기 시작했다.
  • 이후 조선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실질적인 개혁은 거의 없었다.
  • 반면, 일본은 같은 시기에 근대 헌법을 만들고, 서구식 군대와 산업화를 완료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결국 조선은 일본이 강대국이 되는 동안 내분과 부패로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3. 일본이 이렇게 빠르게 근대화할 동안, 조선이 놓친 기회들

조선이 개혁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왕과 권력층이 개혁을 거부하며 모든 기회를 날려버렸다.

 

메이지 유신 직후(1870년대 초반) – 일본처럼 개혁할 기회

  • 조선은 일본을 본보기 삼아 개혁할 수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펼치며 스스로 기회를 차버렸다.

갑신정변(1884) – 조선 개화파가 개혁을 추진했을 때

  • 개화파가 서구식 개혁을 시도했지만,
    고종이 청나라를 불러 탄압하면서 기회가 날아갔다.

청일전쟁 이후(1895년) – 일본이 청나라를 무너뜨렸을 때

  • 조선이 자주국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고종은 여전히 개혁이 아닌 왕권 유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조선은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는 동안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렸고,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결론 – 조선과 일본의 차이, 개혁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강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었고, 근대적 군대와 산업화를 단기간에 성공시켰다.
조선은 개혁의 기회를 여러 번 날리며 내부 권력 다툼과 부패로 시간을 허비했다.
일본이 불과 20~30년 만에 강대국이 된 동안,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식민지가 되었다.

 

결국, 조선을 멸망시킨 것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무능한 지도자들과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고,

 

개혁을 거부한 대가로 조선을 일본에 바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많은 나쁜 짓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러시아,프랑스,영국,독일,미국 등이 

 

아시아의 국가들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들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한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조선이 스스로 강해지고 근대화 되지 않았다면

 

다른 국가의 식민지가 될 운명이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으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을 게 조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을 절대악으로 만들고 욕하기 바쁘다. 

 

이는 진정으로 욕을 해야될 대상이 누구인지를 놓치게 한다 

 

바로 조선의 권력층이다. 

 

부패하고 개인 욕심만 가득한 이들은 

 

조선이 식민지가 되게 하는 데 1등 공신이었다. 

 

이를 우리는 알고 널리 퍼뜨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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