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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뉴진스 계약해지 논란: 왜 사람들은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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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계약 해지 소식은 대중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팬들이 보여준 분노의 본질을 깊이 살펴보면, 이는 단순히 팬심이나 연예계 관행을 넘어서, 사회적 관념과 시스템에 대한 내재된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감정은 바로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관념과 충돌하다

일반인들은 "계약은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믿음은 단지 법적 의무나 도덕적 의무를 넘어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참고 다니고, 계약 조건이 부당하다고 느껴도 따르는 이유는 이 관념이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입니다. 계약과 규칙은 우리가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틀" 역할을 합니다.

 

일단 글로 적힌것, 계약서에 적힌 것은 무조건 지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반인의 습성은 법률을 잘 아는 이들에게 종종 이용당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을 따르며 살아가고, 동시에 자신도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겪는 부당함과 억울함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내면에 쌓이게 됩니다.

 

사회적 억압을 참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하소연하며 자신을 달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뉴진스 사건이 특별히 분노를 일으켰는가?

이런 상황에서 뉴진스 같은 대중적 스타가 "잘못된 계약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보여주거나, 부당함에 직접 반기를 든다면 대중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행동이 정당하거나 옳게 보일지라도, 규칙과 시스템을 따라온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선택을 부정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5년 동안 참고 살아왔는데,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라는 의문과 함께 억울함이 화로 바뀝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반항이 시스템을 흔드는 데 성공한다면, 그간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온 자신의 삶이 어리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은 마치 모두가 매일 16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100만 원을 받는 세상에서, 누군가 “나는 못 해 먹겠다”며 8시간만 일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이때, 정작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16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시스템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16시간씩 일했던 사람들이 먼저 달려와 8시간 일하겠다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시스템을 떠받치며 살아온 다수의 사람들이 그 시스템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보다, "내가 참아온 게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자기 방어 심리 때문입니다.

 

결국,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시스템에 도전하면, 오히려 그 도전자를 공격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화살은 왜 잘못된 곳으로 향하는가?

뉴진스와 같은 스타가 계약 해지를 통해 시스템에 도전할 때, 대중들은 자신의 분노를 잘못된 대상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분노해야 할 대상은 부당한 계약 조건을 만든 시스템과 이를 유지해 온 기득권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은 시스템 자체에 도전하는 대신, 더 가깝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합니다. 이는 인간이 변화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을 반영합니다.

 

결과적으로, 뉴진스처럼 시스템을 흔들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대중의 비난과 분노를 받게 됩니다. 이는 대중이 시스템에 순응하며 억눌린 삶을 살아온 자신에 대한 분노를 전가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뉴진스 사건은 단순히 연예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어떻게 시스템과 규칙에 적응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 모두가 “계약은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관념을 넘어, 그 계약이 과연 정당한가를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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