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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심리과 역사

한국인은 왜 냄비근성이 강한가? – 빠르게 반응하고 쉽게 식는 성향의 이유 한국 사회에서 ‘냄비근성’이라는 말은 익숙하다.어떤 사건이 터지면 빠르게 관심을 가지고 강한 반응을 보이다가도,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이 식어버리는 성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한국인의 성향은 단순한 개인적 기질이 아니라,역사적·사회적·문화적 요인과 더불어, 중심이 되는 가치관의 부재에서 비롯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즉, 한국인은 원래 빠르게 반응하는 민족성이 있었으며,강한 경쟁과 높은 생존 난이도를 겪으며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상황이 변하면 빠르게 관심을 철회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여기에 확고한 중심 가치관이 부족한 사회적 환경이 더해지면서,문제의식이 쉽게 흐려지고 지속적인 관심이 어려운 특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왜 이렇게 강해진 것일까?1. 한국인은 원래부.. 더보기
성리학의 확산과 여성의 몰락 – 고려의 평등에서 조선의 착취로 한국 사회에서 남녀차별이 본격적으로 심해진 것은 조선 시대부터였다.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높았고, 법적으로도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았다.그러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여성의 지위는 급격히 추락했다.특히 조선이 안정기에 접어든 15~16세기 이후부터는 여성 차별이 심각해졌으며,임진왜란(1592) 이후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단적으로 강화되었다. 즉, 성리학의 확산은 여성들에게는 곧 억압과 착취, 그리고 권리의 박탈을 의미했다.여성을 억압한 가장 강력한 사상은 성리학이었고,이는 조선 내내 여성들을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 철저히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1. 고려 시대 – 남녀평등의 흔적이 남아 있던 사회고려 시대까지는 여성도 법적으로.. 더보기
영웅을 기다리는 사회 – 한국은 왜 시스템 개선보다 개인 영웅을 의존하는가? 한국 사회에는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한 명의 위대한 영웅이 등장해 모든 걸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강하다. 조직과 구조를 혁신하기보다는 특출난 개인에게 기대고, 그 사람이 모든 걸 해내길 바라며, 온 힘을 몰아준다.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 영웅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약해지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만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시스템이 아니라 영웅 한 명에게 모든 걸 맡기는 패턴을 반복해왔다.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1. 조선시대 – 시스템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바랐다조선은 임진왜란(1592) 당시, 완벽하게 붕괴된 시스템 속에서 한 명의 영웅이 나라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당시 조선의 군사 시스템은 엉망이었다.임진왜란.. 더보기
메이지 유신과 조선 – 일본은 근대화를 해냈지만, 조선은 기회를 놓쳤다. 19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 침입하며 근대화의 파도를 일으켰고,이 파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 나라의 운명이 갈렸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불과 30여 년 만에 강대국으로 변신했다.반면, 조선은 같은 시기 아무런 개혁도 하지 못한 채 내분과 부패로 시간을 허비하며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일본은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했고, 조선은 실패했을까?그 차이를 비교하면, 조선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고 얼마나 무능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1. 메이지 유신 –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도약한 과정메이지 유신은 1868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개혁이다.서양 열강의 침략을 막고,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전통적인.. 더보기
고종은 불쌍한 왕이 아니다 – 사치와 무능으로 조선을 망친 군주다 고종은 흔히 불쌍한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그려진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종은 186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의 왕이었고, 1895년부터 1897년은 대조선국 군주(사실상 조선과 동일)이고 1897년부터 1910년까지는 대한제국의 황제였다.  일본과 서방이 본격적으로 쳐들어온 시기를 빼더라도 고종에게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고  1인자로 군림한 게 46년이나 된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이 9번이나 나오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 시기동안 고종은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외세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기만 했다.   왜 고종은 이토록 무능력했을까? 간단하다.   고종에게 조선은 국가가 아니었다.그에게 조선은 그저 자신의 개인 소유물에 불과했으며, 백성은 자신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었다.국가와 .. 더보기
조선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세조 때부터였다 – 왕조의 타락을 부른 불법적인 권력 찬탈 조선은 세조(世祖, 1417~1468)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몰락을 임진왜란(1592)이나 병자호란(1636) 이후부터로 보지만,사실 조선의 근본적인 부패와 약화는 세조의 불법적인 정권 찬탈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지 불과 60여 년 만에 권력층이 썩어가기 시작했고,이는 결국 조선을 근본적으로 약한 나라로 만들었다.만약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처럼 대륙에 있었다면,훨씬 빨리 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조가 조선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살펴보자.1. 세조는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다 – 불법적인 왕위 찬탈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세운 나라였지만, 왕위 계승 원칙은 정당성이 중요했다.즉, 왕이 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고, 반란으로 왕위를 빼앗으면 절대 안 되었다. 하지만 .. 더보기
한국인은 왜 금전만능주의에 빠지게 되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돈이 곧 성공이고, 돈이 곧 행복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돈이 전부다”,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사람들은 집값, 연봉, 자산을 끊임없이 비교하고,SNS에는 명품과 해외여행, 고급 음식 사진이 넘쳐난다. 왜 이렇게 한국인들은 금전만능주의에 집착하게 되었을까?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과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급속한 경제 성장과 빈부격차의 확대한국은 1960년대 이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루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고, 경제력이 곧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1) 가난했던 과거와 ‘성공한 사람’에 대한 동경19.. 더보기
한국인은 왜 사주팔자를 많이 믿고 찾아다닐까? – 불안한 사회가 만든 운명 의존 심리 한국 사회에서 사주팔자, 점집, 운세 상담은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특히 새해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시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간다.젊은 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카페형 점집이 등장하고, 온라인 사주 서비스까지 활성화되며운명을 알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하고, 사주팔자에 의존하게 되었을까?그 배경에는 한국 사회가 가진 특유의 불안감과 심리적 압박감이 자리 잡고 있다.1. 한국 사회의 불안감 –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심리한국은 경쟁이 치열하고 압박이 심한 사회다.어릴 때부터 성적, 대학, 취업, 결혼, 내 집 마련까지 삶의 중요한 과정마다 경쟁과 평가가 따른다.“이 길이 맞는 걸까?”“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앞으로 어.. 더보기